어느날 티뷔를 보니 그러더라.
어른들께서 세상을 대하는 바른 시선을 기르기에 꼭 필요하다던
9시 뉴스에서 대통령이 속한 여당을 두고
친노, 반노, 무소속 이렇게 편가르기를 하고 있더라.
몹시도 친절하시게.. 친노 국회의원아무개씩, 반노 국회의원 아무개씨..
하면서 신당창당의 의지에 대해 묻더라.
그런걸 보니 이거 학교폭력도, 왕따도 저렇게 편가르는 9시뉴스가
절제도 과감도 없이 내보낸 컨텐츠에 있지 않나 싶었다.
정작 필요한 내용에는 눈과 귀를 가리면서
꼭 쓸데없는 데 필요도 없는 정보를 참으로 친절하시게도 알려주었단 말이지.
그래 한참을 지켜보다보니 참 그랬다..
나는 이다음에 저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다시 찍겠다 했다.
그 다음에도 말이다.
그래도 그 양반한테는 개도 안물어갈 공명심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사학법, 삼불정책..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이 어째서 이사회에서는
바보같고 어리석은 일이란 말인가.
저 더런놈의 공무원들.. 저놈의 주둥이에 뭔가를 쳐넣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는 건설업계 어느분의 통한섞인 일갈을 들으며
그래 이런 사회에 저런 대통령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냔 말이냐 말이다.
남도사람들이 정신적지주라고 믿었던 김대중은
늙어 정신이 나간것인지, 치매인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탐욕이 많은 사람이였는지
자기 아들이 국회의원에 나간다니 별 수 없단다.
우리나라 지성이라는 전 레이디퍼스트께서는
손수 민주당의 부활을 위해 아들 김홍업의 찬조연설을 했다.
다리라도 부러뜨려 스스로의 체신을 살릴 것이지 그렇게라도
이곳사람들에게 일말의 자존심을 좀 살려주지 그랬냔 말이다.
어쩜 그렇게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우리 아버지를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있냔 말이다.
나는 아직 그 함성을 기억한다.
내가 한참도 더 어렸을때 김대중이 온다는 이유로
어린자식의 손을 부여잡고 사람이 가득찬 도청에서
그 양반 얼굴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눈물이 가득차던 그때를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 양반은 여기.. 그러니까
내고장 광주사람한테 자랑이였다.
가난하고 힘들고,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전라도 깽깽이 소리에, 사투리를 단박에 없애는 스킬까지
길러야 했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들에게
그사람의 민주화운동은, 감옥에서의 투혼은 자랑이였고, 자부심이였다.
힘은 없지만 밀어붙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을 때 정치보복을 하면 안된다고
여기사람들이 나서면 하고싶은거,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거
못한다고, 대통령이 됐으니까 나라살리는 길 한번 제대로
열어주라고 바라는 것도 없었다고 한다.
뭐.. 이 나라 정권이양의 특성이라면
이 지역에 아예 뭐가 없다 할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하물며 5.18에 대해서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도 말이다.
정권이 끝난뒤 터져나온 여러사건들
그래.. 고 정주영회장의 향수병을 이용해서 현대를 팔아
노벨평화상을 탔다는 그 의구심이 어느정도의 신빙성을
본인의 연고지에서까지 가지게 됐다면..
그래.. 어른이라면.. 그 양반이 많은 사람들의 자랑이였던
그 분이 낸 생채기는 그냥 생채기가 아니다.
그양반이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그래 얼마나 해먹었다고 그러냐고.
그 전의 대통령들은 그보다 더 했다고
뭘 고작 그런거 가지고 그러냐고 할양이라면
좆까라.. 이거다.
같은 사람이였다면 나의 부모님이 그 양반을 자랑으로 삼지 않았을꺼다.
그놈들처럼 그렇게 데면데면한 면상으로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없이 그렇게 남의 나라사람인것처럼 그렇게
민족의 이름 앞에 똥칠을 제대로 한 그사람처럼 그런 사람이라면..
뭐.. 이번에 자기자식 함함하는 걸로 보아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그랬다면 참.. 우리 부모님의 젋은 시절 그양반에게 걸었던 기대가
참 불쌍하지 아니한가.
그러니 그 양반 그러지 않았어야 하지 않나.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그 분의 자식사랑한번 대단하더라고 물었더니
한숨을 쉬시더라.
그 양반이 격동의 세월을 지켜온 민주화는 비록
개인의 의지를 무력으로, 폭압으로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일지 모르겠으나 당신의 정신적입지라는 것은
그런것이 아니지 아니한가.
민주주의도 좋고, 유교사상이 21c를 통과하는 데
분명히 많은 담론을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가 지켜온 우리 자신의 정신적 배려와 예의와 사고마저
그렇게 미국처럼 합리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건가.
그 양반이라면 옳은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나.
내가 바라는 건 그런거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는 당이라면
그래 그 당의 전신이 어떻게 되었든
그래 차선의 선택이 차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 선택이 한나라당이라면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그대들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예전부터 이곳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 한가지를 전하자면
한나라당에서 인물 한명만 보내줘봐. 안찍어주나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놈들만 우후죽순 보내놓으니
별 수 있어 더러워도 아는 놈 찍어야지..
지역주의운운해도 낸들 뭘 할 수 있나.
예전 열우당이 과반석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총선때 처럼
그렇게 정말 호남에서 지지를 받고 싶다면
한나라당에서도 호남을 위해 힘써 일해 줄 사람을 보내주면 된다.
호남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고쳐먹으면 된다.
언제까지 전신을 따라할텐가 말이다.
언제까지 전신이 지녔던 죄를 물고 갈텐가.
한나라당이 거대야당이라면 바른 야당도 되야 하지 않겠나.
오죽하면 대통령이 국민 대 대통령으로 이야기를 하겠는가.
이것은 전환기이고 과도기다.
김대중정권이 삼김구도의 마무리단계로서 좀더 넓은 의미의
평화적 정권이양이였다면 노무현정권의 지금은
철저하고 현저한 과도기 양상을 보이고 있지 않나.
그것이 모조리 대통령의 입놀림 때문인 것처럼 그렇게 몰고가니
언론은 아무 책임도 없는 것처럼 신나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고름들이 조물조물 터지고 있는 작금의
모든 현상이 모두 노대통령이 대학을 안나와서이고,
해본놈이 아니라서 이고, 잘 살아본 놈이 아니라서 이고,
피해의식이 있어서 인가.
그래 먹어본 놈들이 그렇게 질겅질겅 씹고 나서 뱉어놓은 걸
도대체 지금 이 정권.. 그것도 머리가 뭐가 들었는지 나라가 들었는지
지네들 탐욕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아가리를 벌이고 있는 지도
모를 그런 커다란 바위산 들 틈에 고립무원으로 서있는
지금 이 정권에게 그렇게 큰책임 있단 말인가.
아니 대통령이 그렇게 큰 책임이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언론에서 정말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생각했다면
그대들 어떻게 한나라의 대통령을 가차 없이
짓밟는 언사를 연일 찍어낼 수 있나.
그렇다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탄핵을 했을 때 너도나도 촛불이 가진 추모의 의미를
집회의 성격으로 뒤바꾸어야만 했던 이유는
이 사람은 한나라의 대통령이다. 라는 것이다.
기득권에게야 굴러들어온 돌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겨운 삼김시대, 독재정권, 기득권, 부정부패로부터
대안으로 선택한 민심의 정점이였다.
그것은 민심이 대통령에 기회를 부여하고자 선택한거였다.
평가야 이제 얼마남지 않은거고.
일거수일투족을 비꼬고 조롱하고..제 얼굴에 침뱉는 건지도 모르고,
뭐가 잘잘못인지.. 어떤것을 비꼬고 조롱해야하는지 어떤 것을 지지해주어야 하는지
그런 언론사 스스로의 잣대도 없이 그렇게 하더니 말이다.
박정희때는 열심히 잘 살았고 경제도 발전했다고,
전두환때는 그래도 먹고 살만 했다고, 깡패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자유주의적 발언, 무정부주의적 발언 한마디에 빨갱이라는 족쇄를
달아 살인아닌 살인을 저질렀던 그 정권들이 그렇게 잘해서
지금 터지는 일련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모두 지금 정권의 탓이냔 말이다.
고질적인 병폐라는 말은 오래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몹쓸 것이라는 뜻이라는 것
쯤은 다 알것이다. 오래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병폐의 한가운데 서있는 것이
지금의 기득권이고, 보수층이다.
젊은이들에게 바르게 살지 말것을 강요하고, 편법을 가르치고
겸손하고 청렴한 공무원은 반병신을 만들고, 말이 안되면 폭력으로,
.. 잘못한게 있으면 꾸짖어야 한다.
전두환을 저대로 내버려두면 안된다.
저 대대한 위세를 그렇게 내버려두면 안된다.
합천군수의 오판에 대해서 바른 인식을 갖도록
청소년들이,정치에 관심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5.18이 빨갱이들이 저지른 폭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외국인근로자들에게 행하는 인종차별을,
무분별한 사교육을, 비리가 빈번한 사학법을,
인터넷여론몰이의 허와실을,무엇이 잘못인지 아닌지
크게 꾸짖고 바로잡아야 하는 거다.
옳은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
스스로 판단의 잣대를 지닐 수 있도록 지혜로운 해석이 가능하도록
균등하고 사실에 가까운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설과 칼럼을 통해 국민의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그게 지금 팔짱끼고 앉아 대통령찍기에 여념이 없는
스타들의 영욕에, 한심한 악플들에 일희일비하는 그대들
언론들이 할일이다.
그대 언론들은 갈길이 멀기도 멀거니와 할일도 많다.
남의 일처럼, 남의 집 불구경처럼 그렇게 앉아있을 것이 아니단 말이다.
★ ‘대통령 때리기’ 재밌습니까?
라이 (phosarang)
조낸 한토마블로그에서는 모든 블로그에 트랙백을 할 수 있다는 데
네이버는 한토다블로그 트랙백을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남긴다..;;
‘대통령 때리기’ 재밌습니까?
2002년이 다시와도 노무현을 찍었을 것
‘대통령 때리기’ 신드롬
집권 초부터 수구 기득권층으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해온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대열에 어느 시점부터인지 중도를 표방하거나 진보를 자처하는 집단이 적극적으로 가세함으로서 참여정부는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진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같은 사안을 놓고도 보수와 진보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대통령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들이 현 정권에 대해 가하는 비판은 전혀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교나 안보분야의 경우 보수층은 참여정부를 반미 친북 좌파정권이라고 비판받지만, 소위 진보 계층이 가하는 비판은 ‘참여정부 역시 기득권 세력의 일부 일 뿐 아니라 현 정국을 빗대 ’노무현식 신공안정권’이란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보수 기득권층에 비쳐진 현 정권의 경제정책이 성장을 외면한 채 분배에 몰두하는 좌파정책을 펼쳐 기업의 경제 의지를 꺾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하지만, 노조나 진보 계열로부터는 서민경제 압살을 주범으로 비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통령때리기’현상은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참여정부의 구성원이었던 전직 각료나 참여정부의 지지자였던 일부 진보계층, 심지어는 집권당을 구성하고 정권 재창출을 꿈꾸는 여당 정치인조차 인기 없는 대통령 때리기에 합류함으로서 자신의 정치 활로를 찾으려는 형국이 되었다.
막말로 부동산이 폭등해도 대통령 탓이고 규제를 통해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도 대통령 탓이며, 연예인이 자살하거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있어도 “대통령이 덕이 없어서..”라고 읍조리면 고개를 끄덕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대통령 과연 그렇게 잘못했나?
앞에서 언급 된 외교 안보분야에 대해 현 정권이 보수층으로부터 반미정권이며 친북 좌파정권이라고 비판당하고, 동시에 진보측 으로부터는 현 정권이 진보의 탈을 쓴 수구 정권의 변형된 모습이라고 공격당하는 것은 참여정부가 취할 수 있었던 정책적 수단이 그 만큼 제한적이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우리 사회가 완성된 성숙된 민주 정부가 아니라 민주화의 진행 도상에 있는 전환기의 정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 정부가 각료나 고위 공직자로 기용할 수 있었던 인적 자원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고위 공직자나 입각 대상자 대부분은 독재 치하에서 출세가도를 달려온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과거의 관행을 유지하려니 개혁적 인사가 불가능하고, 대통령의 의지에 부합하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하면 ‘코드 인사’란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참여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인사가 ‘전작통환수’와 관련하여 대통령을 비난한 일이나, 현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워온 보수 언론 사주인 홍석현씨를 주미대사에 기용한 사례, 지난 재보선 선거에서 현 정부의 경찰청장을 역임했던 허준영씨가 야당인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한 사례 등을 보더라도 대통령이 얼마나 빈약한 인적자원으로 현 정부를 꾸려왔는지 알 수 있다.
정부 각료나 고위 공직자 그리고 검찰이나 검찰, 군인, 법관, 경제인, 언론인이나 학자 대부분이 과거 독재 정권이나 권위 정부 치하에서 출세하여 보수적 시각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임기 5년 단임제의 고졸 출신의 대통령은 굴러온 돌에 불과했다. 당선 1년 전까지 아무도 대통령이 되리라 예상치 못했던 야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언론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지만 과도기의 대통령에게 자신의 정치 신념을 뒷받침할 세력이 조성되지 못했다는 것은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오랜 착각에서 깨어난 대통령
자신의 정치철학을 뒷받침할 세력이 빈약한 정부에게 지난 총선은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고 자신의 정치 신념을 관철시킬 좋은 기회였다. 국민 다수가 현 정권을 지지하고 여당에게 원내 과반의석을 허락한 것은 ‘참여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해 보라.’는 국민의 암묵적 동의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그 시점부터 정부 여당의 갈지자 행보가 시작 되었다.
4대 개혁입법은 소수 야당의 의회점거에 의해 무산되었고, 화급을 다투던 민생 법안은 언제나 민생이 아닌 이념 갈등이나 사립학교법 같은 엉뚱한 이슈에 발목이 잡힌 채 표류하였다. 법치국가에서 사회개혁을 이룰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확보한 참여정부가 보수 기득권 집단의 불법적 협박에 무릎을 꿇은 모습은 참여정부를 지지해온 수많은 지지자의 이탈을 가져왔고, 수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통령이 대안으로 내세운 ‘한나라당과의 연정카드’는 참여정부와 여당 최악의 궁지로 몰아넣은 불행의 전주곡이 되었다. 그 때부터 정부 여당의 정체성은 크게 훼손되었고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식물정당으로 몰락하였다.
사실상 임기의 마지막 해인 2007년에 보여 지는 대통령의 모습은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다. 마치 오랜 기간 제정신이 아니었던 사람이 문득 제 정신을 찾은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임기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대통령의 발언이 여전히 품위(?)가 없는 것은 품위를 갖추기 위해서 권위적 대통령이 되기를 거부한 ‘탈 권위 시대의 대통령’의 한 단면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특유의 화법으로 매우 거칠며 도전적으로 이어진 대통령 발언의 요지를 요약해보면,
1.여론에 의해 호도된 서민경제의 위기의 책임은 참여정부가 전담해서 짊어져야 할 업보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하는 일반적 현상이라는 지적과,
2. ‘수구 기득권 세력과는 어떤 형태의 타협도 불가능 하다.’는 참여정부 정체성의 재확립,
3. 국민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정치적 연출이 결국은 참여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는 자기 성찰일 것이다.
고뇌의 흔적이 없는 비판론자들
주변에는 입바른 소리를 곧 잘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입바른 소리를 잘 하는 사람들은 남을 평가하길 좋아하고 비판하기를 즐겨하는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심리적 이면에는 ‘내가 이렇게 잘났다.’는 우월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과시욕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드러난 다양한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당사자가 문제를 해소하거나 완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위한 진지한 성찰을 방해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양극화 문제나 외교 안보문제, 교육 , 언론, 법조 개혁 등 모든 문제가 당사자의 첨예한 이해로 얽혀져 있다. 정책을 수행하는 정부 가 어떤 자세를 취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당사자의 격렬할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인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도 참여정부는 방폐장 문제나 새만금 문제 등을 과거정부와 다른 자세로 접근하여 돌파구를 찾았고, 사태가 훨씬 복잡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북핵문제나 양극화문제 서민 복지 문제 등에서도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세력의 정권재창출과 관련하여 진보를 자처하는 원리주의자들이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크게 나빠질 것이 없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나는 경멸한다. 한나라당의 정책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고, 재벌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며 미국에 굴종하는 외교정책을 펼치자는 것이며, 대북 강경책을 펼치자는 것이다. 물론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매도할 ‘신 메카시 선풍’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참여정부를 “노무현식 공안정권이라며 타도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보다 더 친 기득권 세력이며 보다 패권국가인 미국에 굴종적이며 보다 반민주적인 정치집단의 집권기간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누구든 입바른 말을 하기는 쉽다. 우리 사회에 표출되는 다양한 문제점은 오랜 역사적 배경과 당사자의 첨예한 이해로 난마처럼 얽혀져 있다. 대통령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함으로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만 있다면 필자라고 ‘대통령때리기’에 뒤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숱한 말의 성찬 보다 숙고(熟考)가 필요한 시점이며, 큰 이상을 풍선처럼 떠올리기보다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도록 온 몸으로 막아야 할 때다. 많은 사람이 지금을 '최악의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추락해야 할 나락은 아직도 가파르다.
진전한 개혁은 최선이 아니면 최악을 택하는 무모한 도박이 아니라 최소한 차선이라도 택하는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최악의 상황이라도 피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