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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입니다.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유행처럼 번지던 배낭여행을 일본으로 가겠다고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IMF로 환율이 배로 뛰는 바람에 벌어놓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버려서 술로 탕진해버렸지만 말입니다.
일년 일찍 들어간게 무슨 죄라고 뻑하면 반말댓거리를 해대는 생일빠른 후배님들 덕에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성년의 날에 실은 아침부터 왠지 모를 짜증이 밀려와 수업에 들어와도 그대는 F 라는 전공교수님의 친절한 일갈을 등에 업은 채 목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스무살 성년의 날이라고 언니의 새옷을 몰래 훔쳐입고, 그때는 분명 1,100원밖에 하지 않았던 디스와 과자를 평소 삐삐만 덩그러니 굴러다니던 골빈 이스트팩에다 챙겨넣고, 산지 한 두달정도 된 아이보리색 컨버스화를 구겨신었습니다. 행색은 아마도 평범하게 보통정도는 되었을 텐데도 왜 그렇게 못나고 초라한 지 부모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기차 맨 뒷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망상을 거듭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내내 처음이었고, 마지막일 차장아저씨와의 동석이 그나마 짜증스럽던 기분을 한풀 꺾기게 해주었습니다.그마저도 찰나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가방안에 들어있던 과자도 나눠먹고, 차장아저씨의 첫사랑이야기도 들으면서 목포에 도착했습니다.
목포에 도착해서도 우울한 기분은 가실 기미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역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려고 육교를 건너는 데 플랑카드를 걸어놓은 쇠못의 철사에 걸려 언니의 새옷이 뜯기고 말았습니다. 차장아저씨가 알려준 버스번호가 달려오기에 허겁지겁 달리다 그렇게 된 것이죠. 되는 일도 없고, 머피의 법칙도 이럴 수는 없다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데 그나마도 안좋은 시력덕분에 버스번호를 잘못 봤던 겁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 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생각에 학교를 나서기 전 엄마와 싸웠던 것도 같고, 어쩌면 아무것도 한 게 없이,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대학교 3학년이 되버린 스스로에게 반발이 일었던 것도 같고, 하긴 그것뿐만이 아닐 겁니다. 마치 순서가 그렇게 되어있던 것처럼 어떤 동기녀석들은 휴학을 하고, 또 다른 녀석들은 군대에 가고, 나머지 녀석들은 사랑을 찾거나 전과를 하거나 편입을 하거나.
이제는 달려야 할 때라고, 방황하는 청춘은 이제 끝났다고. 너는 거기서 뭐하는 거냐고. 아버지도 엄마도 물었습니다. 언니도 묻고, 언니의 남자친구도 묻고,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고 교수님을 찾아갔던 친구녀석을 만나 간만에 영화를 한편 보려고 했더니 그 녀석도 묻더군요.
혼자한 여행이니 뭔가 사색적이고 풍요로운 기분이 들어야 하는 데 나는 그것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데 여념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변화의 속도보다 변화의 본질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열여덟살 때 처음 느낀 패배감은 팽배해질 대로 팽배해져 내 안을 모두 잠식하고 있었는 데도 중요한 건 변화의 속도인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습니다.
뭐 속도든 본질이든 중요한 건 그때의 나는 머리 한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는 패배의식을 지워낼 수 없었다는 것일 테지만요. 지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나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감을 상실시켰고, 미친듯이 사랑했던 것을 외면하게 만들었으니, 그만한 변화가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또, 빛의 속도로 사라져버린 금기와 열정과 안녕에게 미처 작별을 고하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바다를 보아도, 헤밍웨이에 앉아서 차를 마셔도 워크맨을 통해서 들려오는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기만 했습니다. 못마땅하고 짜증스럽던 기분은 슬슬 우울한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었죠. 일찌감치 광주행 버스를 타고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교앞 피자집 창고에 가서 앉아있으니, 한쪽 구석에 기타가 보이더군요. 김광석의 노래 밖 에는 아는 게 없어서 제대로 벌어지지도 않는 손가락으로 어렵사리를 코드를 잡아 기타를 쳤습니다. 딱 한번 쳐보고 기타는 내 손에서 거둬졌습니다. 이유는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 였죠. 쳇!
수업도 안 들어오고 어디있었냐는 친구의 물음에 목포에 기차여행을 갔다왔다고 스스로를 포장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우울한 기분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있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을 줄줄 해대며, 친구의 파안대소를 이끌어 냈지만 결국 울컥해버렸던 것은 나를 찾으러 왔던 그 버릇없는 후배녀석들 때문이였습니다. 그대도 성년이 되었구려 라며 자기가 받았던 장미꽃다발에서 한송이를 빼내 건네주던 녀석, 팔짱을 끼며 술이나 먹으러 가자던 언제나 나를 최고로 막대하는 녀석, 도대체 누이는 몇살이오? 라며 주민등록증 예시를 보채던 녀석, 게다가 친구는 갖고싶은게 뭐냐고 물었고, 친구의 남자친구는 술을 사줬습니다. 다른 곳에서 술을 먹던 선배는 뜬금없이 삐삐에 연락을 남겼죠.
아아 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나는 그날 성년의 날, 내가 약관의 나이로 접어들 무렵을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느린 걸음으로 인해 속도를 재촉받았던 나는. 그래요. 나는 그 걸음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이라면 그 재촉에 여유롭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텐데 아니 인생사 어차피 독고다이 혼자 가는 거야!! 라면 코방귀라고 한번 뀌어봤으면 말이죠.. ㅋㅋ
당시의 나는 스무살로 온몸에 털을 곤두세우고,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였습니다. 사실 걸리면 말없이 고이 보내드렸을 심성이였지만.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합니다. 유약하지만 소심하고 고집센 변태가 울면서 달리는..;; 그런 야련한..(?) 기분이 일품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1집에 실린 생일기분이라는 노래는 어쩌면 이리도 묘하게 적막한 습성과 들어맞는 지 말입니다.
사실 노래와 이 긴 내용의 두서없는 글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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